요가 디피카 - 10점
B.K.S.아헹가 지음, 현천 옮김/선요가


처음 요가를...아니 요가처럼 보이는 스트레칭 자세들을 시도해 보았을 때에는 단순히 유연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무작정 몸짱이 되겠다고 벨트 위를 뛰는 행위는 너무나 무의미해서 너무나 유지하기가 힘들었고, 길어야 일이 분만 버티면 되는 요가 자세들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자세 설명들을 찾아보거나, '연예인을 전문으로 가르친다는 리듬체조 선수 출신 강사'가 낸 책 같은 것을 보면서 연습을 했다. 요가 강사에게 잠깐 배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꾸 하다보니 무언가 허전하고, 빠진 것 같고,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찾아보다가 이 책을 구했다. 그리고 책장을 펼쳤다가... 단숨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치웠다.

예전부터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레토릭을 여러 번 듣기는 했지만, 그 말을 실제로 절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요가 비디오와 책과 자세 설명들이 내게 별 감명을 주지 못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단순히 자세를 잡는 것 뿐이라면 좀 요상한 모양의 스트레칭에 지나지 않고, 몸을 가꾸기 위한 것이라면 웨이트 트레이닝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요기(요가 수행자)에게 있어 건강과 신체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결과일 뿐,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몸을 이해하고, 몸과 대화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 몸을 타고 있는 마음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 요가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세한 아사나(요가 자세)의 설명과 도판들을 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1부, 즉 자세 설명도 사진도 없는 개론이야말로 진지하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비로소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 이제 나는 요가를 하면서 TV를 틀어놓지 않고, 시작전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자세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몸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보려고 시도한다. 초보 요가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20081102

요가는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너지를 조직적인 채널로 바로 전해 주는 수단이다. 마치 거대한 강이 댐이나 운하로 잘 이용되면 큰 저수지가 되고, 가뭄을 막아 주고, 풍부한 전기를 산업체에 제공하듯이, 마음도 적절히 조절될 때 평온의 저수지가 되어 인간을 향상시키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만든다 p17

몸안에 흐르는 에너지를 제대로 갈무리해 생산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할 때 우리는 중독에 빠진다. 중독은 잉여 에너지를 끊임없이 고갈시켜 서서히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술, 담배 뿐 아니라 일, 연애, 무의미한 수다, 인터넷 서핑, TV, 만화, 영화, 드라마와 같은 것들이 전부 중독적인 도피처가 될 수 있다. --SeeReal

사람이 깊이 잠들 때는 자기의 이름, 가족, 지위, 지식과 지혜, 심지어 자기 자긴의 존재마저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면서 자기 자신을 잊었을 때 그는 상쾌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잠들 때 혼란스런 생각이 마음에 스며들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p22

잠들기 전 요가를 하는 것이 다음 날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참으로 지대하다. 쾌적한 수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SeeReal

요기에게 그의 신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본 도구이다. 만약 탈것이 고장난다면, 여행자는 더 이상의 여행을 할 수가 없듯이 좋지 않은 건강으로 몸을 망친다면 수행자는 그가 원하는 것의 조금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육체적 건강은 정신적인 계발을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음은 신경 구조를 통해서 그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육체가 병들거나 신경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무디어지고, 생기가 없고, 집중이나 명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p24

'gu'라는 음은 어둠을, 'ru'라는 음은 밝음을 의미하고 있다. 어둠을 걷고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이가 바로 구루이다. '구루'라는 말은 참으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지도자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단순히 생계를 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영혼의 스승이다. p30

...신들의 왕인 인드라와 악마의 왕자인 비로차나는 절대자에 관해 알고자, 곧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브라마Brahma를 찾아갔다. 둘 다 그곳에 머물며 구루의 말을 경청했다. 인드라는 깨달음을 얻은 반면, 비로차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인드라의 기억 기능은 그가 그의 스승에 대한 사랑과 신심 그리고 가르침에 대한 순수한 집중으로서 발전된 것이다. 그가 구루와의 일체감을 가진 것이 바로 그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비결인 것이다. 비로차나의 기억 기능은 단지 그의 지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그는 스승에게도, 스승의 가르침에도 몰두하지 못했다. 그는 원래 그대로의 모습, 즉 거만한 지식인으로 남아 의심으로 가득 찬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인드라는 지적 겸손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비로차나는 지적인 자만에 취해서 그가 브라마에게 가르침을 청한 그 자체가 자신을 낮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드라의 접근은 신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비로차나는 매우 실질적이다. 비로차나는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었고, 그가 훗날 권력을 장악하기에 유용하다고 믿는 실질적인 지식을 원했다. p31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스승을 만나도, 가르침을 얻어도 받아들이는 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꿀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숭배해 마지않는 지적 명민함은 오만함을 부를 따름이다. --SeeReal

시스야(제자)는 우선 무엇보다도 사랑, 절제, 겸허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사랑은 용기를 낳고, 절제는 풍요를 낳고, 겸허는 힘을 낳는다. 사랑이 없는 용기는 잔인함일 뿐이며, 절제가 없는 풍요로움은 방종과 부패를 가져온다. 겸허함이 없는 권력은 오만이나 독재를 부른다. 진실된 시스야는 구루로부터 그가 근원적 자아로 돌아갈 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배운다. p31

아트만(자아)은 마차의 주인으로, 이성은 마부로, 마음은 고삐로 알아라. 우리가 보통 말하는 감각 기능은 마차를 끄는 말들이며, 그들 욕망의 대상은 목장이다. 감각 기능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될 때, 현자들은 그 자아를 향유자라고 부른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그의 마음을 고삐질할 수 없다. 그의 감각 기능은 날뛰는 말들과 같다. 분별력 있는 사람은 그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고, 그의 감각 기능은 길들여진 말들과 같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늘 산만하고, 순수하지 못하다. 그는 절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 생에서 저 생으로 끊임없이 윤회를 되풀이하며 방황할 것이다. p33

감각 기능들은 욕망의 대상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감각 기능들보다 더 강한 것은 마음이고, 마음보다 더 위의 것은 이성이며, 이성 위의 것은 바로 신성이다. 자아로 당신 자신을 교육시키고, 욕망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물리쳐라. 바가바드 기타, 3장 42~43절 (via 요가 디피카)

분노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마음을 타락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성숙에 연결되어지는 분노이다. 전자의 바탕에는 자만심이 깔려 있어 사소한 것에도 우리를 성나게 한다. 이것은 마음이 올바른 견해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요기는 그의 내면이 비루해지고, 그의 경험과 학식이 그를 어리석음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때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낸다. p37

평생을 통해 우리를 지탱해 주면서 동시에 소모되어지는 물질, 그 음식물은 단순한 식물(食物)이라기보다는 브라만, 즉 우주 순환원리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입 한 입 먹는 것이 '절대 신성'을 섬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야 음식이 청결해진다. p43

나는 '안전한 식품'이나 채식주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산물'에 대한 강박 이전에,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식생활을 진정으로 성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SeeReal

타파스는 신성과의 일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고 이 목표를 향해가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욕망을 태워 버리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가치있는 목표는 삶을 계몽시키고, 정화, 신성하게 한다. 그런 목표가 없다면, 행위와 기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타파스가 없는 삶은 사랑이 없는 가슴과 같다. 타파스가 없다면, 마음은 '절대 신성'에 도달할 수 없다. p45

스바드아야(성전을 통한 자아 교육): 스바sva는 자아를 의미하고, 아드아야adhyaya는 교육이나 연구를 의미한다. 교육은 사람 속에 내재하는 최상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바드아야는 자아의 교육인 것이다. 스바드아야는 강사가 무지한 청중 앞에서 자기 지식을 늘어놓는 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다. 스바드아야는 연사와 청중이 한마음이 되고, 서로 사랑과 존중을 가지게 된다. 설교는 있을 수 없고, 가슴과 가슴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스바드아야로부터 일어나는 고상한 생각은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그의 삶과 존재의 한 부분을 이룬다. 스바드아야를 수행하는 사람은 삶이라는 자신의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 책을 만들고 수정한다. 인생관이 바뀌게 되고, 그는 모든 만물이 향락보다는 오히려 박티(신심 또는 헌신)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즉, 만물은 신성하고, 그 자신 안에 신성이 있고, 그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우주를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p45~46

언어학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의 체계적 학문으로,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그 언어를 더 잘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요가 자체가 종교가 아니고 '종교적 수행의 한 형태'로 그것의 연구를 통해 구도자는 자신의 신심을 더 잘 이해하게 한다. p46

만약 감각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고뇌가 있을 따름이다. 그것들은 지식과 자제로써 억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서도 성취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모든 힘의 원천인 '절대 신성'에게 도움을 구한다. 이때가 바로 박티(신심)가 우러나는 단계이다. 이 우러나는 단계에서 마음, 지성, 의지는 '절대 신성'에 굴복하고, 구도자는 기도한다.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나니,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p47

그러게,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SeeReal

다른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거나 이루기 위해서 기도한다. 헌신적인 마음의 상태나 진정한 사랑의 마음에는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을 곳이 없다.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는 관념이 사라질 때 개인의 영혼은 완전한 성숙 단계에 이른다. p47

개인의 욕구 충족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 마음은 '절대 신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개인의 욕구 충족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진 마음일 때는 욕망의 대상에 그의 마음이 끌려다니는 위험성이 있다. 욕망을 비우지 않은 마음으로 박티(헌신)를 실천하려는 시도는 젖은 나무로 불을 피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연기만을 가득 피워 불을 지피려는 이와 그 주변사람들이 눈물을 쏟게 한다. 욕망이 있는 마음은 불이 붙어 작렬할 수 없을 뿐더러 심지어 지식이라는 불로도 빛이나 온기를 만들 수 없다. p47

요가의 세 번째 단계는 아사나, 즉 요가 자세이다. 아사나는 안정감, 건강, 수족을 가볍게 해 준다. 균형 있고, 기분 좋은 자세는 정신적인 평정을 가져다 주고, 마음의 변덕스러움을 자제하게 해 준다. 아사나는 단순한 체조가 아니다. 그것은 요가 자세이다...(중략)...아사나는 근육이 굳지 않고 강하고 탄력있는 훌륭한 체격을 보장해 주고 병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한다. 또한 아사나는 피로를 없애 주고 신경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아사나의 실질적인 중요성은 몸의 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닦아지는 데 있다. p48

많은 배우들, 곡예사들, 육상 선수들, 무용수들, 음악가들, 운동가들은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고, 육체를 조절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마음과 지성, 자아를 다루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그들 자신과의 부조화를 이루며, 그들 중 균형잡힌 인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종종 육체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요기는 그의 육체를 경시하지 않으며, 단순히 완벽한 육체만이 아니라 감각, 마음, 지성과 정신의 완벽함을 함께 추구한다. 요기는 아사나의 수행으로 육체를 정복하며, 정신 수행에 적합한 수단이 되도록 한다. p48~49

아사나를 행함으로써 구도자는 먼저 건강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건강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힘든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가치있는 것이다. 육체와 마음과 영혼의 완전한 평형 상태이다. 몸도 마음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자연의 상태를 건강이라 한다. 요기는 아사나를 행함으로써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는 이 세상에 봉사하는 것에 의해 그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를 '절대 신성'에게 돌린다. p49

요기는 그의 삶과 모든 활동들이 사람의 형태를 빌려서 이루어내는 본래 신의 행위와 역할임을 깨닫는다. 그의 맥박과 호흡의 리듬 속에서 계절의 흐름과 우주적 삶의 고동을 알게 된다. 그의 육체는 신성이 머무르고 있는 사원이다. 그는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과 육체를 신성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육체가 우주적인 생명의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육체의 요구는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성의 요구이다. 요기는 신을 찾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는 신은 안타라트마(Antaratma, 내적 자아)로 알려진, 자신 속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신의 왕국이 자신을 감싸고 있음을 느끼고 하늘이 자기 자신 속에 내재함을 알고 있다. p49~50

그에게 있어서 몸은 그의 정신적 해탈에 방해가 되는 것도, 그것을 저하시키는 요인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해탈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 그는 '절대 신성'을 섬김에 있어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 천둥 번개만큼 강하고, 건강하고, 고통이 없는 몸을 갖고자 한다. '문다카우파니샤드'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강직함이 없고, 무분별하고, 목표가 없는 사람은 자아를 이룰 수 없다. 굽지 않은 토기는 물 속에서 풀어지듯이 육체도 곧 쇠퇴한다. 그런 연유로, 육체를 정화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 요가적 수행의 불꽃으로 단단히 그것을 구워야 할 것이다. p50

17세기 신비주의자인 카리바 에켄Kariba Ekken은, "만일 당신이 고요한 영혼을 갖고자 한다면, 먼저 호흡을 조절하라. 호흡이 잘 조절되면,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다. 호흡이 불규칙하다면 항상 걱정 근심으로 불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시도하기에 앞서, 당신의 기질을 부드럽게 하고, 당신의 영혼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호흡을 조절하라."고 했다. p54

요가의 길에서 진전의 표시는 건강, 육체적 민첩감, 안정감, 용모의 깨끗함, 아름다운 목소리, 몸에서 풍기는 향기,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움 등이다. 그는 안정되고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바로 겸손함의 상징이다. p65

([http]웃타나아사나) 이 아사나는 위장병을 치료하고, 간장, 비장, 신장의 기능을 좋은 상태로 만든다. 또한 월경 기간 복부의 통증을 덜어 준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척추 신경은 활기를 찾는다. 이 자세로 2분 이상 있는다면, 어떤 우울한 마음일지라도 사라진다. 이 자세는 쉽게 흥분하는 사람에게 효과가 크다. 그 이유는, 이 자세는 뇌세포를 진정시키기 때문이다. p116

!!! '어떤 우울한 마음일지라도 사라진다'!!! 해 보았다. 사실이었다. 의외로 이 자세(서서 무릎을 편 채로 몸을 반으로 접어 발가락을 잡거나 발뒤꿈치 뒤쪽의 바닥에 손바닥을 대는 것)를 몇분동안 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무지하게 힘들다. 한 요가 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자세를 하루에 5분씩 제대로 한다면 한달에 수 키로씩 몸무게가 쑥쑥 빠진다고 한다. 그 정도로 힘든 자세다. 하지만 정말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감정과 기분이란 것이 대부분 신체적인,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http]받다 코나아사나)이 자세는 특히 비뇨기계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권한다. 골반, 복부, 등은 혈액의 충분한 공급으로 자극받게 된다. 이것은 신장, 전립선, 방광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 준다. 인도 구두 수선공에게서 비뇨기 질병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사실은 유명한데, 그 이유는 이 자세로 하루종일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자세는 좌골 신경통을 치료해 주고, 탈장을 예방해 준다. 규칙적인 수행은 고환의 통증과 뻐근함을 없애 준다. 이 자세는 여성들에게 있어 하나의 축복과 같다. ..(중략)...불규칙한 생리 주기를 치료해 주고, 난소의 기능을 정상화시킨다. 임산부가 매일 몇 분간 이 자세로 앉아 있으면, 순산할 것이고, 정맥의 흐름이 자유롭게 될 것이다. p162~163

'이 자세는 여성들에게 있어 하나의 축복과 같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이 참 마음에 든다.

([http]브르스치카아사나)폐는 복부 근육이 뻗쳐지면서 활짝 열리게 된다. 전 척추가 왕성하게 조율되고 건강한 상태가 된다. 이 아사나는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식과 힘의 원천인 머리는 자만심, 분노, 증오, 질투, 편협과 악의의 집이기도 하다. 이 감정들은 전갈이 그 침에 갖고 있는 독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다. 이 자세에서 요기는 발로 그의 머리를 누르면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감정과 욕망들을 근절시키려고 한다. 자신의 머리를 발로 참으로써 겸손, 침착, 관용 등을 계발하게 되고 그러므로 에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고의 정복은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 p478~479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자세로서, 한 5년쯤 열심히 수련하면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목표로 삼았다.

시체처럼 등을 대고 눕는 것을 마르타아사나Mrtasana라고 한다. 이 자세는 피로를 없애 주고, 마음의 동요를 잠재운다...(중략)...몸의 어떤 움직임도 없이 안정되고, 부드럽고, 가늘고, 깊은 호흡은 신경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현대 문명의 스트레스는 신경의 긴장으로 오며,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는 가장 좋은 해독제이다. p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