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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궁금하네요. -- xyxy 2009-05-20
음, '이상형'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상적 이성상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시각의 지평이 자기에게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에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일지 가끔씩이라도 고민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의 과제들에 도망가지 않고 맞서며,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줄줄 알고, 지적인 추구와 신체의 단련을 소홀히 하지 않을 뿐더러,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이랍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이상적인 남성상이 아니라 제가 되고 싶은 인간형의 모습일지도 모르겠군요. 뭐, 두가지가 크게 다른 거겠어요? 20090520
2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
"제가 개요만 짜놓고 아직 쓰지 못한 글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나 지인 중 하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그 사람의 답변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끝으로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보기에 누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그럼 친구가 말한 그 사람을 찾아 갑니다. 그 사람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똑같은 질문을 이렇게 릴레이로 합니다. 그러면 잘(좋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입니다."
자, 씨리얼 님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기준에 비추면 어떤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 배휘동 2009-05-20
우선, 저 아이디어 참 맘에 드네요. 여력이 된다면 훔치고 싶을 정도로.
'잘 산다'에 대해서는 사람의 머릿수만큼의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을 비교했을 때, 전자가 월등히 더 좋은 곳일 경우 그 사람은 잘 살고 있는 거라고요.
이 정의의 장점은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는 사실이에요. 눈에 띄든 안띄든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면 그만인 거에요. (물론... 일반 사회상식에 부합하는 수준에서... 데스노트의 키라처럼 흉악범을 죽이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음... 좀 곤란할지도...)
그걸 누가 평가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건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 같고요. 내가 있으나 없으나 세상엔 별 차이 없냐... 아니면 내가 없는게 더 낫냐... 뭐 알아도 외면할 수는 있겠지만요.
저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이걸 해 말어 하고 고민을 할 때, 저 기준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면 좋은 것들이야 많죠. 그렇지만 과연 이 행위를 하는 것이 나 이외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가? 또 그 과정에서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까? 그런 것 말이죠. 둘 다 충족되어야 해요. 하나만 해당되면 하나마나하고, 둘 다 해당이 안 되면 안 하는게 좋아요.
이 기준에 비추어보았을 때 잘 사는 사람은 이런 사람인 것 같아요.
-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 것.
거창하지 않아도 좋고, 구체적이지 않아도 좋으니까, 있다는 게 중요하죠.
-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을 것
흔히 세상에서 이런게 좋다더라... 원래 그런 거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자신만의 방법론 말이지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게 되더군요.
- 그 목표가 이루어지더라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향을 세워 다시 매진할 것.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때 뭔가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죠. 하지만 평생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숨 넘어가는 순간까지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하다가 더이상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090520
2.1 예시: 잘 사는 사람들 #
+ 자다깨서 혹시 원하셨던 건 예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덧붙여보면...
도닦는 프로그래머
김창준씨,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도 키우고 계신
단풍시럽님, 일상언어와 노래의 경계를 탐구하는
장기하, 판소리를 통해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하는
이자람, 한국적 SF의 장을 개척하고 있는
배명훈 작가, 디자인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정신세계를 꿰뚫어보는 김민수 교수, 수학 지진아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신념하에 초등수학을 연구하고 있는
강미선 선생님이 있으시죠.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기 삶에서 맞닥뜨리는 의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서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결국 자기만의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이분들 중 어떤분은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있고, 최근에 알게 된 분들도 있는데 하나같이 제 삶의 향방에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영향을 미쳤답니다.
저는 이분들을 제 멘토이자 삶의 라이벌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멘토라는 게 꼭 저분들이 저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이럴 때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더라구요. 라이벌인 것도 물론 경쟁의 의미가 아니라, 제가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삶은 살기 싫은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기 때문에 라이벌인 거지요.
이밖에도 여러가지 의미로 본받고 싶거나 앞날이 기대되는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거나 아직 자신의 의문을 찾아헤매고 있는 중이지요. 나중에 이런 사람들 얘기만 모아서 책 낼까봅니다. 20090521
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어떻게 보세요? #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을 어떻게 보세요? 기린님이 정치현안에 대한 언급을 하는 건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 미스리 2009-05-24
4 외롭고 힘들면 어떻게 하세요? #
외롭고 힘들면 어떻게 하세요? -- 노새 2009-05-30
저는 주로,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인 일들을 주로 합니다. 근데 TV보기나 웹서핑이나 게임 같이 소비적인 것들을 하면 안 돼요. 자괴감이 커지니까요. (그러나 종종 그렇게 하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하는 것은
1. 몸을 움직이는 것.
요가나 자전거 타기 같은 걸 종종 해요. 특히
요가디피카에 나온 '
웃타나아사나'같은 걸 하면 기분이 많이 좋아져요. 기분의 높낮이는 많은 경우 호르몬의 불균형에 의한 거라고도 하잖아요. 땀을 흘리고 나면 어느 정도 기분이 반등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운동 말고 잡초를 뽑을 때도 있어요. 막 엄청 크게 자란 왕건이 잡초를 쑥 뽑아내면 참을 수 없이 상쾌한 기분이 들거든요. 요새는 모 님에게 배운 내가신장(기마자세랑 비슷해요)을 연습해보는데, 10분만 하고 나면 내가 뭣때문에 삽질했던 거지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 고민들이 사소하게 느껴져요-_-; 물론 하고 나면 시원하고 말이죠.
2. 뭔가 만들기
마음이 힘겨울 때에는 주방에 들어가요. 냉장고 속에서 늙어가는 과일을 구출해 잼을 만들거나, 멸치 대가리와 내장을 따내기도 하고, 괜히 빵이나 과자를 굽거나 돼지고기를 사다가 돈가스로 재워놓아요. 아무튼 손 많이 가는 일을 하는 거에요. 뜨개질을 하기도 했는데, 뜨개질 자체의 중독성이 너무나 커서 창작 에너지를 좀먹는 것을 깨닫고 요새는 끊었습니다.
3. 대청소
제가 청소를 잘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닌데, 한번 그런 흐름을 탔던 적이 있어요. 너무너무너무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만 아무도 안하던 대 위업을 이뤄버렸답니다. 당시 머물던 관사를 싹 정리하고 치워버렸어요. 1년간 방치되었던 상태라 쓰레기봉투만 100리터로 열개...-_-; 외로움과 고통을 승화시킨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으나... 그때 너무 에너지를 소진했는지 다시 그런 걸 하게 되지는 않게 되더군요.
4. 글쓰기
어찌보면 외롭고 힘든 상태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 소비적인 일로 도피할 수도 있지만, 창작을 하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상태인 거예요. 외롭다는 건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고, 힘들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니까, 그걸 글로 푸는 거죠.
원칙적으로는 그런데, 그런 순간에 쓴 글들은 공개하기 힘들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도 쓴다는 데 의미가 있으니까 손 가는 대로 쓰곤 해요.
4-1. 글쓰기를 할 만큼 에너지가 없을 때
...에는 책에서 밑줄을 그은 부분을 타이핑해서 블로그와 위키에 업데이트를 합니다. 단순작업이면서도 생각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나름 생산성도 있기 때문에 의외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돼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샤프로 줄을 그어 두었다가 이럴 때 날을 잡아서 업데이트를 합니다.
5. 명상
사실은 안 힘들고 안 외로울 때 명상을 해야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삶의 에너지 준위가 낮을 때 하는 명상은 거의 자기 위로에서 시작해서 위로에서 끝나는 것 같아요. 너무 힘들면 명상하다가 자버릴 때도 있어요. 그냥 자는 것보다는 조금 상쾌하더군요. 자세는 좀 불편하지만...
6. 별로 권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만
벽장 속에 들어갑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벽장 속에 들어가요. 제 방에 있는 붙박이장같은 벽장이 굉장히 크거든요. 평소엔 거기다가 이불을 넣어놓는데 그 위에 올라가면 푹신해요. 문을 닫으면 컴컴해지고 자세도 웅크리게 되기 때문에 엄마 뱃속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되더군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오면... 조금 나아요.
뭐, 이런 것들은 기법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그걸 자기 힘으로 딛고 일어나려는 의지 같은 게 아닐까요. 단순한 작업들, 청소, 운동은 그걸 바라보고 맥점을 짚어내려는 도구인 거죠. 아무튼 중요한 건 술이나 담배나 TV나 전화통화나 마냥 일하는 것처럼 중독적인 걸로 빠지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그러지 않기가 참 힘드니 그게 문제입니다...-_-; 20090531
5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무엇인가요? #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무엇인가요? -- 배휘동 2009-06-04
아 이 또 이런 화두를 던져주시다니...
우선 저는 인생의 목표를 설장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적이 없다면 20살에 대학가서 25살에 취직하고 27살에 결혼해 30이 되기 전에 애 낳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거든요. (노파심에 부연하자면, 저런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게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거랍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여러 번 말했듯, '제가 존재하는 세상이 제가 없는 세상보다 더 살만하고 가치있는 곳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 수도 있고, 좀 적은 사람들이 알아줄 수도 있고, 저만이 홀로 꿋꿋이 일로매진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누가 알아주거나 인정해주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목표란 그 목적에 복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우선 저는 작가로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 도정에 문학상이나 베스트셀러가 있어도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 글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의 여부예요. 그 긍정적인게 꼭 '아~ 이 글을 읽으니 이런 실천을 해봐야겠어~' 같은 말랑한 효과가 아니라 충격을 받고, 갑자기 주변이 달리 보이고, 차라리 안 읽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의 효과도 있었으면 해요. 이를테면 제가
리처드 도킨스의
TheSelfishGene을 읽고 그랬던 것처럼요. 세계관이 바뀌더군요.
사실 그러기 위해서 꼭 소설을 쓸 필요는 없어요. 저는 픽션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 목적과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뭐든지요. 공동작업도 해보고 싶고, 그 글이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에도 참여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시나리오 개작 정도는 무리없이 공동작업에 참여하는 일이 되겠지요. 물론 누가 영화로 만들어준다고 해야 하겠지만...
저는 주로 글쓰기를 해 왔으니까 책을 매개로 한 소통이 손쉽게 떠오르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목표들도 이것저것 있기는 하지만 그걸 다 말하면 너무 길어질 뿐더러 아직 구체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커밍쑨...
아무튼 요약하자면 이래요. 저는 구체적인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지표로서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어떤 가치와 명성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 (지금 돈이 없는 것은 아직 성취가 모자라서...ㅜㅜ) 다만 제 삶에서 은퇴란 없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 삶의 매 순간에 주어지는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 방법론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실패에 천착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거구요. 지금까지 못했던 거니까 난 안돼... 이런 게 아니라 배워서 하면 되는 거라고 여기고 해 보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리고 그걸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피드백이 몇 번 왔다갔다하면 그 효과는 무시무시하게 커지거든요. 지금 제가 배휘동님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여태까지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해오긴 했지만, 구체화시켜보니 저도 신선하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6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기린님 뿐 아니라 저도 결혼 적령기라서 궁금하네요. 저는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압력을 자주 받고 있지만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어요. 결혼의 장점과 단점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모르겠더라구요.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결혼하자는 남자가 없는 것이지만요. -- 이미란 2009-06-04
7 교육학 이론이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나요? #
(이 질문이 이QnA성격과 맞는지 잘모르겠네요)교사였다고 하셨는데, (전 교육학과는 무관) 교육학을 가끔 접하다보면 귀인이론이니 뭐니 이론들이 상당히 많던데요. 실전?에서 정말 응용을 하게되나요? 아니면 이론은 이론일 뿐인가요 -- uuu 2009-06-06
우선,
QnA에는 아무거나 물어보셔도 됩니다. 다만 대안학교 관련 질문들은 중복되는 경향이 있어서
FAQ로 정리해놓은 것 뿐이랍니다.
사실 저는 교육학 전공자가 아니라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학교현장에 간 것이 아니랍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거의 무식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듯 배웠는데, 나중에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책을 좀 보았어요.
근데, 일단 교육학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심리학이나 사회학, 철학 등에 상당히 빚지고 있는 2차 학문이잖아요. 결국 몇 권의 기본서를 제가 읽어보고 내린 결론은 결국 교육학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응용학문이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은... 엉뚱하게도
진화생물학이었어요. 학부때 진화에 심취해서 여러 가지로 공부를 했었는데, 거기에 보면
본성대양육의 논쟁이 있거든요. 즉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제도나 교육을 통해 조작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얘기예요. 상당이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주제인데,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성장기 아동의 남성성과 여성성, 애정결핍, 좌절된 욕구로 인한 정서장애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거든요. 결과적으로 현장에 가서는 아, 그 얘기가 이 얘기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밖에도 자기계발 서적에서 읽었던 여러가지 기법들, 혹은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자아의 여러가지 요소들, 심지어는
요가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 나온 몸과 정신의 관계... 그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되었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교육이란 결국 한 사람을 그전과는 다른(긍정적인 의미에서) 존재로 만들어주는 일련의 과정이잖아요. 그러니 사람을 바꾸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론과 그 연구결과는 다 도움이 되지요.
요약하자면, 현장에서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떤 것을 의도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방법론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죠. 다만 그 이론이 '교육학' 이론에 한정되어선 안된다는 것이예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면 그야말로 잡식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20090609
8 유부남,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유부남,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고민중 2009-06-09
음, 아마도 이 질문은 가정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곤란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겠지요? 질문이 좀 포괄적이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좀 어렵기는 한데... 일단 제 맘대로 답해보자면
저는 상대방의 가정에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지점의 고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다면 유부남/녀를 꼬셔서 가정을 파괴한다 한들 오래된 연인을 해체시키는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지요. 사회적으로야 다소간의 파장이 있겠지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가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불가역적인 것이잖아요. 아이가 살아서 자라나는 한, 두 사람은 절대 과거의 관계를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가 없지요. 그 경우 유부남/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자신의 감정이 한 사람-아이 말입니다-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영향(보통 긍정적이지 않습니다)을 줄 만큼 확고하고 의미있는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에 따른 결과에 일정 부분 책임질 의사가 있는지도 말이지요.
하지만 님의 질문이 이런 치정사건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가정이 있는 사람이 좋아졌어요...라는 것이라면, 저는 이렇게도 말하고 싶어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고요.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성적인 뉘앙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구체적인 성적인 인터코스가 있지 않는 한 플라토닉 러브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관계가 주는 긴장감이 서로간에 더 많은 것을 주고받게 해 주기도 하구요.
저는 인간의 동물적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동물적이지 않은 측면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좀더 살만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창작의 교감을 나누는 관계, 고통과 상처를 공감하고 보듬어주는 관계, 성장의 에너지를 교호하는 관계, 가능성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관계, 상대방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관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덜어주는 관계... 그리고 아직 발견되고 발명되지 못한 얼마나 많은 관계들이 있나요.
저는 제가 가졌던 연애에 대한 욕구가 상당부분 이런 관계에 대한 욕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간관계가 훨씬 더 풍요롭고 의미있게 되었답니다. 사실 만나는 모든 이성을 잠재적 연애상대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좀 많이 피곤한 일이잖아요. 대신 그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의외로 정말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러다보면 제가 하고 싶은 게 저 사람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대화를 나누고 친밀해지고 싶은 것이었구나...라고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질문의 의도에 부합하는 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결국 이 코너는 다른 분들의 질문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요^^; 20090609
9 학벌과 능력은 정말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
학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더 지적이고 명석한가요? 제가 보기엔 좋은 학교를 나와도 어떨 때 보면 저보다 못한 사람도 있는 것 같고, 근데 또 보면 이름값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 궁금이 2009-06-17
제가 생각하는 학벌의 정의는, '특정 시기에 특정한 테스트를 특정한 정도로 통과했다는 증명'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이 지성이나 지식과 연관관계가 있다는 편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필기시험과 지성의 연관관계에 동의하지 않아요. 또 대입시험의 과목들이 한 인간의 지성과 인격,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때로는 엉뚱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역시 제가 몇 번 언급했던 명제, '사람은 지금까지의 성과가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으로 판단되어야한다'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벌이란 건 '과거'를 기준으로 한 위상이잖아요. 일종의 카스트죠. 물론 어떤 사람들은 카스트는 선천적으로 결정된 것이고 학벌은 후천적으로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논리지요. 부모의 학벌과 경제력, 지역적 위치가 학벌과 명백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논란의 대상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학벌이 허상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사람들이 그 허상에 지배를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실제 지적 능력과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학벌로 일단 라벨링이 되고 나면 그 사람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거기에 지배된다는 거예요. 사람은 스스로의 자아상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난 3류대학 출신이야'라는 자아상과 '그런 대학 나와서 어디 일이나 제대로 하겠어?'라는 일반의 인식이 결합되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정말로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죠.
사실 그런 학벌주의를 진심으로 믿는다면 교사로서건 학생으로서건 애초에 교육을 시도한다는 게 불가능해요. 이미 그 사람의 가능성은 다 결정나 있는데, 교육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입시학원들처럼 성적으로 수준 갈라놓고, 굳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할 애들에게 애써 지루한 강의를 늘어놓는 게 교육은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여태까지 어땠건, 지금 무얼 알고 있건 간에 그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얼마만큼의 의지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 바뀌고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거죠.
제가
존경하고 또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온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습니다. 특정 대학에 다소의 편중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저의 생활공간이 그랬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어떤 우연한 결과로 이름없는 대학에 갔다 할지라도 똑같이 명석하고 똑같이 유능하며 똑같이 재능이 넘치는 분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 인간을 평가하는데 학벌 뿐 아니라 '스펙'이 핵심적 요소가 된다는 것은 참 곤란하다는 거예요. 설사 그것이 어떤 정보를 준다 할지라도, 한 사람의 본질 중 극히 일부만 보여주거나 혹은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카스트에 지배되어 허상을 실제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너무 슬픈 일이구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고등학교에 떨어진 개인사가 있습니다. 비평준화 지역에 살았는데, 거기에서는 학교를 하나 선택해서 시험을 쳤어요. 근데 문제는 복수지원이 안 되어서, 한 학교에 떨어지면 그 다음 레벨의 학교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미달된 학교에 2차로 가야한다는 것이었어요. 마침 새로 생긴 학교가 있어서 떨어진 아이들이 모두 그 학교로 몰려갔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전교생의 2/3가 어딘가에 떨어진 아이들... 우리는 거의 일년동안 내내 자기가 떨어진 학교와 떨어진 이유와 그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졸업할 때까지도 좀처럼 그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재능인지 아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암울한 시기에서도 저는 언제나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것 때문에 친구가 정말로 거의 없었습니다만...(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재수없어요?) 결과적으로는 그 학교에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던 수시모집에서 운좋게 티오를 획득했고, 수능성적이나 내신이 아닌 글쓰기와 면접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에 통과해서 좋은 대학에 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제가 '난 고등학교도 떨어졌는데 언감생심 무슨...'이라고 생각했다면 굉장히 불리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참 언제 어디서나 기고만장했기 때문에...-_-; 결과적으로 스펙의 불리함이 제 능력이 발현되는 것에 좀 덜 영향을 미쳤던 거죠.
요는 저의 성공스토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입시의 실패가 저의 학업성적 혹은 글쓰기 능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처럼, 설사 그때 제가 떨어져서 명문대에 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20대때 했던 일들을 어디서든 했을 거라는 거예요. 그게 저라는 사람의 가치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깎아먹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저의 학벌이 저의 가치를 더 키워주거나 업그레이드시켜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물론 학벌로 인해 좀더 유리하게, 좀더 편하게 가능했던 것들도 있었죠.(과외로 돈도 벌었고...) 하지만 어디 사는게 그렇게 쉬운가요? 삐까뻔쩍한 라벨이 있다면 그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고, 만약 그러지 못하다면 더 심한 멸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결과적으로 또 저는 취직에서도 직업적 능력 수행에서도 학벌이 별 영향을 못 미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는 나보다 못하고... 그런 삶의 모델을 내면화시키는 경쟁위주 입시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관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토너먼트나 피라미드가 아니잖아요. 지적능력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회적 능력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쓸 데가 있는 것이고, 오히려 뛰어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라벨의 빛깔에 눈이 멀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가 적은 것 같아요.
근데 저도 아직 인간이 덜 되어서 습관적으로 '나보다 잘난 사람 다 나와봐'라는 모드가 되곤 하는데, 그럴 때 보면 제가 하는 말들이나 오버하는 행동이 저 스스로도 아주 보기가 싫어요. 억지로 겸손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음 속에서 자신의 현재 잘난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모습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런 태도는 안 갖게 되겠지요. 반대로 제가 '꿀린'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를테면 영어실력이나 명문고등학교 라벨이나 집안의 경제력이나 등등등... 그런 것들에 주눅이 들면 또 아주 기가 푹 죽어서 움츠러든게 그것도 참 보기가 싫구요. 결국 자기 마음 속에서 흡족한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따라가면 과거의 경력이나 레벨은 정말 한줌도 안되는 무의미한 말장난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요. 20090620
10 SF 이외의 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
SF 말고 다른 장르의 소설이나 글을 쓸 생각은 없으세요? 예를 들어서 칙릿 형식이지만 현실에 대한 고찰과 냉소를 담고 있는 소설 등이요. 칼럼을 써도 잘 쓰실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일단 이름을 알리신 다음에 비평집(영화나 소설, 만화)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SF에 애정을 기울이시는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 이미란 2009-06-21
음... 우선 저는 스스로를 'SF 작가'혹은 그런 작가지망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경우에 따라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SF가 흔히 말하는 장르소설의 장르를 일컫는 것이라면 더더욱이요. 단지 제가 속해 있는 문화적 전통에서는 주제와 소재, 가능성과 변이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거든요. 만화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냥 제가 쓰고 싶은 걸 쓰는데, 그게 SF 내지는 환상문학이라는 범주에서는 그나마 받아줄 여지가 있으니까 거기에 속해 있는 것 뿐이에요. 사실
누에머리손톱 같은 건 청소년소설이라고 출판사에서 빠꾸먹었어요. 딱히 그런 장르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쓴 것도 아닌데 말예요.
그러니 미란님이 말씀하시는 성찰적 칙릿소설이나,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순수'한 소설이나(요새
유미리를 많이 읽었더니 순수한 소설이 나와요...), 아무튼 세상에 존재하거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모든 장르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장르적 규칙을 꼭 준수하려고 하지는 않거든요. 단지 제가 하려는 이야기에 걸맞는 장르가 있다면 그곳의 규칙을 빌려쓸 뿐이지요. 규칙은 알고 쓰면 편리하니까요.
논픽션에 대해서는... 물론 생각이 있습니다. 원래 창작보다는 그쪽에 더 친숙하고요. 근데요, 저는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제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성숙하기 전까지는 이름을 알리려고 애써 시도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제 약점이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랑 관광차 서낭당에 갔다가 장난삼아 돌을 올려놓으면서 '유명해지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더니 서낭당에서 무슨 귀신이라도 하나 달라붙어 온건지 저에게는 이상한 매명심이 있어요. 그게 저의 20대를 많이 괴롭혔죠. 쟤는 나랑 동갑인데 벌써 저런... 쟤는 나보다 어린데 벌써 저런... 누구든 그런 느낌은 가진 적이 있겠지만, 전 좀 심해요. 그리고 실제로 유명세를 얻으면 지금보다도 아아아아주 안좋아질거예요. 제가 그걸 알아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저 혼자 뜨려는 그런 시도보다는 집단에 소속되어 그곳에 기여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웹진거울이고요. 그외에도 시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몇 개 있는데, 그건 윤곽이 드러나면 알려드릴게요.
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제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제 사고구조와 친숙하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어떤 현상이 있다면 그것이 드러나는 양상보다는 그 뒤에 숨어 있는 구조에 더 관심이 많거든요. 물론 소위 말하는 '공돌이' 성향정도로 분석적인 편은 아닙니다만, 그런 구조를 알게될 때 인문학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해석하는 데에도 깊이가 더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자신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SF쪽에서 보면 좀 안 정통적이고... 순수문학 쪽에서 보면 또 안 순수하고... 그럴 것 같아요. 20090623
11 Rinspace.com과 SeeReal.org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방명록을 보다가, '우와아아악' 같은 글을 안 쓰신다는 말을 보고 조금 섭섭했어요.전 예전 린스페이스 시절 기린님 글도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재밌게 보고 있지만, 가끔씩은 예전처럼 발랄한 글투로 쓰시던 것도 보고 싶어요. 아 이건 질문이 아닌가. 질문을 해보자면, 예전 린스페이스와 지금 시리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라자루스
음, 의외로 린스페이스시절을 기억하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근데, 방명록에 썼던 것은 옛날에는 '우와아아악'이라고 쓰던 걸 지금은 안 쓴다는 뜻이 아니라요... 이 말의 맥락은, 흔히들 장르문학 내지는 환상문학 내지는 SF 작가들이 문장력이 없다고 비판할 때 쓰는 얘기거든요. 의성어를 남발하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창작을 최근에야 시작한 늦깎이인데, 문장이 허접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 것은 아니에요.(네, 듣긴 듣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창작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온라인에서 글을 써 왔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전의 발랄한 글투라 하시면, 아 네, 뭔지 압니다. 알지요.
제가 얼마전에, 다중지능 검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지능을 일곱가지의 분야로 나누어서 평가하는 것인데, IQ처럼 수리과학쪽에 편중된 테스트보다 훨씬 흥미로운 것들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말이죠, '언어지능'과 '수리과학지능'만 솟아 있고, 나머지는 너무나 낮은 거예요. 특히 '자기이해지능'이 떨어지는 편이었어요. 이 검사를 해주신 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글재주가 있거나 달변이라는 이야기는 듣지만, 그 재능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대요. 즉 자신의 재주라는 그릇에 뭘 담아야 할지 잘 모른다는 거지요.
저는 과거의 제 삶을 부정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요. 사고도 치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고요. 하지만 어느순간엔가, 정말로 다른 인간으로 업그레이드가 되고 싶었어요.
닉네임을 바꾼 것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죠. 그러면서 홈페이지 이름에 '린'자가 들어가 있었던 이상, 새로운 홈페이지 이름도 가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까지와는 좀 다른 종류의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땐 창작을 시작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딱히 픽션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건 아니다'라는 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써도 될 것 같은 그런 글이요. 제가 매일같이 쓰던 문화컨텐츠에 대한 리뷰(see also
리뷰란) 나, 어디 가서 크림소스 스파게티 먹었다는 일상다반사, 요즘 뜨거운 이슈에 대한 한두마디... 그런 것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그리고 예전의 홈페이지를 가만히 뜯어보면 말이죠... 글 사이사이, 그림 사이사이, 프레임 가장자리와 안쪽 주변에서 무언가가 묻어났어요. 그건, '날 봐줘요'라는 메시지 같은 거였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절 봐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좋아해주고, 떠받들어 주길 바랬어요. 물론 지금도 누가 절 좋아해주면 좋아요. 그렇지만 제가 쓰는 글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즐거움을 선사할 때, 곰곰이 앉아서 생각해보게 만들 때가 더 좋아요. 좋아해주는 것은 결과지요. 그게 목적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져요. 또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아무리 채워도 계속 갈증이 나는 그런 종류의 것이고요. 그게 과해지면....음...연예인이 되고 싶겠지요?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좀 딱딱한 글도 나오고, 재미없는 글도 나오고, 더 안좋은 건 아예 글이 안 나오기도 하고, 장기간
폐관수련을 하기도 하고... 방문하는 입장에서는 감질나거나 실망하거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저 '자기이해지능'을 계발하게 된 것 같아요. 저의 진정한 욕구는 무엇인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지 배우게 된 거지요.
즉 요약을 하자면,
RinspaceDotCom 은 저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이었어요. 저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곳이기도 했구요. (홈페이지 소제목 중에 '책장이 멋있는 여자가 되자'가 있었던 것을 보면 자명하지 않습니까!) 슬픔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그런 곳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SeeRealDotOrg 는 말을 거는 공간이에요. 제 생각과 느낌들을 좀더 구체화하고 확인하면서 발전시키는 곳이고요. 제가 좋아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에너지를 교류하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책 리뷰를 쓸 때는 읽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를 먼저 고민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시나 소설 같은 창작물의 형태로 가공해보려고 노력해요. 그런 글쓰기를 통하게 되면 저의 감정이나 정서들이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있는 것이 되니까 말이죠.
아, 그리고 저는 여전히 발랄하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에 너무 암울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쉬이 절망해서
어둠의작가가 되어버릴 것 같아요. 하지만 눈에 쉽게 띄는 발랄함보다는, 은밀하고 미심쩍은 발랄함을 풍기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20091025
12 seereal님이 현재 도움을 청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
seereal님이 지금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혹은 하면 정말 좋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움 요청을 안하고 있다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 release 2010-01-27
정말로 특이한 질문인데... 지금의 저에게는 왜인지 절절하게 다가오는 질문이네요.
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같은 사람들이죠.
대상에 대해서 여쭤보셨지만 이유도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제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 그래요. 제 진솔한 모습이 드러나는게 무섭고, 저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두렵고, 또 혼자서 하는게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본능처럼 되어버려서 그래요.
그게 얼마나 익숙하냐 하면 도움을 청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상대방의 반응이 제가 기대한 것과 다르면 화를 내거나, 모르겠다고 도리질을 치거나, 심지어 상대방이 '뭔가 잘못한 건가'라고 느낄 정도로 방어적이거든요.
제가 성장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방법' 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거지요.(그밖에 제가 잘 배우지 못한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 '갈등상황에서 화나 짜증을 내지 않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법', '어려운 난관에서 도망가지 않고 괴로움을 견디는 방법'등이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방법에는 적절하게 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도 포함되어 있고 상대방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때에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때를 놓쳐버리면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주어도 오히려 상처만 남을 수도 있게 되어버리는 거지요. 예전에는 '어린시절 귀인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어른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게 된 것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린시절에 상처를 입었으니 난 어쩔 수 없어'에 머무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 커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힘겹기는 하지만... 가끔은 제가 정글북의 모글리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애정으로 충만한 가정에서 신뢰와 성실함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울 때가 있답니다.
제가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중요한 것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20100221
아직 답변하지 않은 질문